인류는 신대륙의 발견으로 세계를 재편하며 해양 시대의 흐름을 바꾸어 왔습니다. 인도양 시대에서 지중해 해양시대를 거쳐 태평양 시대로 건너온 인류는 오랫동안 북극항로를 통해 동서 대륙을 직결하기를 꿈꾸어 왔으나, 북극의 혹독한 기후와 날씨는 언제나 그 꿈을 가로막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으 지구온난화로 인해 그동안 꿈꾸어온 북극항로라는 인류의 소망이 마침내 현실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대륙 국가로써 유럽으로 가는 실크로드가 오래전부터 있었지만 유럽으로 뻗어 있는 대륙횡단 철도·도로망은 북한의 정치·군사적 제약으로 인해 유럽까지 곧장 이어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과거 한반도를 관통하던 ‘대륙의 길’은 1953년 휴전 이후 막혀 버렸고, 이에 따라 우리는 부산항에서 인천·동해로 물량을 모아 배와 기차를 번갈아 이용하는 복합 운송에 의존해 왔습니다.
북극항로의 등장과 물류 혁신의 열쇠
기후 변화로 여름철 북극해의 해빙 구간이 늘어나면서 ‘Northern Sea Route(북극항로)’는 수에즈 경유 항로보다 거리를 30~40% 단축할 수 있는 신(新) 실크로드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실제로 부산에서 네덜란드 로테르담까지 수에즈 운하 경유 시 약 20,000km를 30일에 주파해야 하지만, 북극항로를 이용하면 12,000~16,000km를 15~18일 만에 주파할 수 있습니다. 시간 단축은 곧 비용 절감으로 이어지고, 해상 물류의 경쟁력은 다시 한 번 국가 경제의 성패를 좌우할 터닝 포인트가 됩니다. 특히 우리는 수소경제로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하는 시점에 서 있습니다. 대체 불가능한 에너지 캐리어인 수소를 장거리 대규모로 안정 수송할 방법이 물류 인프라에 달려 있는 만큼, 북극항로의 가치는 더욱 빛을 발합니다.
블루 수소 도입의 경제·기술적 기반
북극항로가 더욱 중요한 이유는 값싸고 안정적인 ‘블루 수소’를 대량 확보할 수 있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러시아 북서부 연안, 특히 야말반도와 무르만스크 인근 가스전에서는 연간 수십억 톤의 천연가스가 생산됩니다. 이 가스를 스팀 메탄 리포머(SMR) 공정을 통해 수소와 이산화탄소로 분해한 뒤 CO₂를 CCUS(탄소 포집·저장) 기술로 영구 격리하면, 이른바 ‘블루 수소’가 완성됩니다.
생산 비용은 킬로그램당 1.5~2.5달러 수준으로, 화석연료 기반의 그레이 수소(1.0~2.0달러/kg)와 비교해 약간 높지만, 재생에너지 기반 그린 수소(4.0~6.0달러유럽 미국 /kg)보다는 절반 이하의 가격 경쟁력을 보입니다.
반면 국내에서 그린 수소를 생산하려면 대규모 태양광·풍력 발전 설비와 전기분해 플랜트를 확충해야 하는데, 농지·산림·해상 설치를 둘러싼 환경·사회적 비용이 지나치게 높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국내 그린 수소 단가는 10달러/kg으로 상승해 현실적 대체재로서의 가치는 떨어집니다. 따라서 우리는 ‘블루 수소 수입’에 국가적 역량을 집중해야만, 화석연료 중심의 에너지 체계를 녹색 연료 체계로 전환하고, RE100(재생에너지 100% 전환) 목표를 실현할 수 있습니다.
일본의 선제적 실증과 부산항 전략
일본은 이미 2019년부터 호주산 블루 수소 도입 계획을 공식화하고, 2021년 ‘Hydrogen Energy Supply Chain(HESC)’ 파일럿 프로젝트를 통해 세계 최초의 액화수소 운반선 ‘Suiso Frontier’를 시범 운항했습니다. 이 선박은 호주 라트로브 밸리에서 액화 블루 수소를 적재해 8,000km를 항해했으며, 고베항에서 하역된 수소는 홋카이도와 이와테현에 완공된 액화·재액화 터미널로 공급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도 부산항을 ‘수소 실크로드 게이트웨이’로 전환해야 합니다. 첫째, 부산신항에 200,000m³급 액화수소 저장 탱크 설치해 다중 진공 단열벽과 나노단열 코팅으로 하루 1% 이하의 보일오프 손실을 관리합니다. 둘째, 10,000m³급 극저온 수소선박을 도입해 주 2회 부산–무르만스크 항로 운항을 확립합니다. 셋째, 항만 내 자동 하역 장비와 고압 가스 튜브 트레일러 공급망을 구축해 액화 물량을 즉시 산업단지와 수소충전소로 분산 공급합니다. 마지막으로, 인천·동해·블라디보스토크 철도 터미널을 연계하는 멀티모달 물류 플랫폼을 완성해 해·육·철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뉴로지스틱스’를 실현해야 합니다.
전략적 과제와 국가적 대전환
부산항과 무르만스크 항을 잇는 북극항로 기반 블루 수소 물류 체계를 완성하면, 초기에는 전체 수소 수입 물량의 5~10%를 북극항로로 전환해 수에즈·말라카 해협 경유 노선의 기후·정치 리스크를 분산하고, 물류 시간을 30% 이상 단축함으로써 연간 물류비 약 2조 원을 절감할 수 있습니다. 이후 북극항로 상업 운항 가능 기간이 연간 6~8개월로 확대되면 물동량 비중을 20~30%까지 늘릴 수 있습니다.
물류 인프라 경쟁력은 곧 국가 경제의 지속 가능성을 좌우합니다. 우리나라는 수출 의존도가 GDP의 약 40%에 이르며, 이 중 85% 이상이 해상 운송에 의존합니다. 부산항이 ‘신 수소실크로드’의 전초기지가 된다면, 값싸고 안정적인 블루 수소 공급을 통해 친환경 연료 체계로의 전환을 앞당길 수 있을 뿐 아니라, 글로벌 수소 시장의 주도권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 수입 관세 인하, 장기 수입계약(LTSA) 지원, 수소충전소 확대 보조금, 디지털 물류 플랫폼 도입 등 정책 패키지를 마련해야 하며, 한·러·중·몽·EU 간 운송 협정과 북한 철도 개방 협상도 병행 추진해야 합니다.
북극항로를 통한 블루 수소 실크로드는 단순한 해상 물류 혁신이 아닙니다. 국가 에너지 안보와 산업 경쟁력을 지키고, RE100 목표를 달성하는 데 필수적인 전략적 대전환입니다. 부산항이 이 길의 관문으로 자리매김할 때, 대한민국은 글로벌 수소 경제 시대의 주역으로 우뚝 설 것입니다.
다음 회차에서는 ‘가정용 분산형 수소 발전 시스템’이 어떻게 우리 일상으로 깨끗한 전기를 공급하는지 살펴보겠습니다.